통계가 감춘 것을 질문하다
나는 통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통계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를 질문하는 연구자다.
북한 경제를 연구하면서 가장 먼저 마주한 문제는 신뢰할 수 있는 통계의 부족이었다. 폐쇄적인 체제에서는 생산량과 소득, 인구 이동과 산업 활동을 설명하는 공식 수치가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다. 공개된 통계조차 정치적 목적에 따라 선택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통계가 부족하다고 해서 현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도시는 확장되고, 건물은 들어서며, 도로와 시장은 형성된다. 사람과 물자는 이동하고 밤의 불빛과 토지 이용은 경제활동의 흔적을 남긴다.
나는 이러한 흔적을 GIS와 위성영상, 도시화율, 건축물 분포, 야간조도, 교통망과 시장 접근성 같은 간접지표를 통해 추적하고자 했다. 공식 수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북한 경제의 구조를 공간적으로 복원하고, 독재국가가 감추려는 현실을 관측 가능한 증거로 확인하려는 시도였다. 통계의 공백을 무리한 추정으로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료를 교차 검증해 가장 설득력 있는 현실의 모습을 찾아가는 연구다.
한국에서도 평균은 현실을 가린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국 경제를 바라볼 때도 유효하다. 한국은 방대한 공식 통계를 생산하지만 통계가 풍부하다는 사실이 현실을 완전하게 설명한다는 뜻은 아니다. 평균과 총량은 사회 내부의 격차를 가릴 수 있고, 행정적으로 정의된 지표는 시민이 체감하는 현실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년실업률이다. 공식 실업률만 보면 취업 준비를 장기간 이어가는 청년, 구직을 단념한 청년, 단시간·불안정 노동에 머무는 청년, 전공과 역량에 맞지 않는 일자리에서 이동을 반복하는 청년의 현실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 ‘실업자’라는 통계적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시장에서의 어려움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청년 고용은 공식 실업률뿐 아니라 확장실업률, 비경제활동 사유, 근로시간, 고용 형태, 임금과 소득 이동성, 주거비 부담을 함께 살펴야 한다.
국가 대차대조표와 가계자산 통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나타난다. 국가 전체의 순자산이나 가계 평균자산이 증가하더라도 그 자산이 특정 계층과 지역, 부동산에 집중되어 있다면 다수 가계의 생활 안정성이 함께 개선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평균자산이 높은 사회에서도 청년과 무주택 가구는 보증금과 대출, 월세와 생활비 부담으로 유동성 위기를 경험할 수 있다. 자산가격 상승은 보유자에게는 부의 증가이지만 비보유자에게는 진입 비용의 상승이다.
거시 총량과 생활 공간을 연결하는 연구
나는 국가 대차대조표의 거시적 총량을 가계금융복지조사의 자산·부채·소득 분포와 연결하고, 이를 다시 지역별 주택가격, 임대료, 고용 접근성, 교통비와 생활 인프라 자료에 결합하는 연구를 하고자 한다.
공간계량모형과 헤도닉 가격모형을 활용해 자산과 기회의 지역적 편중을 분석하고, 이중차분법을 통해 정책 시행 전후의 효과를 검증할 수 있다. 여기에 GIS 기반 시각화와 대시보드를 결합하면 복잡한 경제적 격차를 시민과 정책 담당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할 수 있다.
앞으로 추적할 다섯 가지 질문
숫자를 더 엄밀하게 다루는 길
내가 지향하는 연구자는 숫자를 불신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숫자를 더 엄밀하게 다루기 위해 숫자가 만들어진 정의와 조사 방식, 누락된 집단과 공간적 분포까지 함께 살펴보는 연구자다. 통계를 권위의 언어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증거로 다루고, 평균 뒤에 숨은 사람들과 지도 위에서 지워진 지역을 다시 발견하고자 한다.
궁극적으로 나는 북한 경제 연구에서 축적한 간접추정과 공간분석의 경험을 한국의 청년고용, 자산 불평등, 주거와 지역격차 연구로 확장하고자 한다. 거시경제의 성과와 시민의 체감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데이터로 측정하고, 정책의 명목적 효과가 아니라 실제 수혜자와 부담자를 밝혀내는 것이 나의 연구 방향이다.
보이는 통계를 정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보이지 않는 현실을 찾아내는 것. 감춰진 숫자를 드러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숫자가 사람들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한국 경제 연구에 기여하고자 하는 방식이다.